역사

[스크랩] 윤봉길 의사 의 최후

깜비깜비 2011. 9. 27. 15:57
My Heart Will Go On / Coline Dion
      대한제국(大韓帝國) 최후의 날


      <출사표 中에서>
       
       
       
       
      "23세, 날이 가고 해가 갈수록 
      우리 압박과 우리의 고통은 증가할 따름이다.

      나는 여기에 한 가지 각오가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뻣뻣이 말라 가는 삼천리 강산을바라보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



      수화(水火)에 빠진 사람을 보고
       그대로 태연히 앉아 볼 수는 없었다.
      여기에 각오는 별것이 아니다.

      나의 철권(鐵拳)으로 적(敵)을 즉각으로
       부수려 한 것이다. 이 철권은 관(棺)속에 들어가면
       무소용(無所用)이다.늙어지면 무용이다.


      내 귀에 쟁쟁한 것은 상해 임시정부 였다.
      다언불요(多言不要), 이 각오로 상해를 목적하고
      사랑스러운 부모형제와 애처애자와 따뜻한 고향산천을 버리고,
      쓰라린 가슴을 부여 잡고 압록강을 건넜다."


      <유서 中에서>



      *생가(충남 예산)

       

      "고향에 계신 부모 형제 동포여!
      더 살고 싶은 것이 인정입니다.
      그러나 죽음을 택해야 할 오직 한 번의
      가장 좋은 기회를 포착했습니다.
      백 년을 살기보다 조국의 영광을
       지키는 이 기회를 택했습니다.

      안녕히, 안녕히 들 계십시오."



      <두 아들 앞 유서 中에서>

      *상해 임시정부 청사 사적관 윤 의사 사적전시관
       
       
      "너희도 만일 피가 있고 뼈가 있다면
       반드시 조선을 위하여 용감한 투사가 되어라.
      태극의 깃발을 높이 드날리고 나의 빈 무덤을
       찾아와 한 잔 술을 부어 놓으라...."
       
      <어록 中에서>
      *묘소(효창공원)
       
      사람은 왜 사느냐 이상을 이루기 위하여 산다.
      보라 풀은 꽃을 피우고 나무는 열매를 맺는다.
      나도 이상의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를 다짐하였다.
       우리 청년시대에는 부모의 사랑보다 형제의 사랑보다
       처자의 사랑보다도 더 한층 강의(剛毅)한 사랑이 있
      는 것을 깨달았다. 나라와 겨레에 바치는 뜨거운
       사랑이다. 나의 우로(雨露)와 나의 강산과
      나의 부모를 버리고라도 그 강의한 사랑을
      따르기로 결심하여 이 길을 택하였다.
       
       

      *중국 상해 '홍커우' 공원
      1932년 4월 29일, 이곳에서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났던 곳.일본의 천장절과 승전기념일
       행사에 폭탄을 투척.
       

      안타깝게도 매헌 윤봉길 의사 의거
      현장엔 중국의 문학가 루쉰의 동상이...



      * 거사 기념석


      * * 최후 순국 장면


      * 매장 장면


      ** 장제스 대만 전 총통의 친필

      1967년 윤봉길 의사 유족들에게
      전달해준 친필 붓글씨당시 국민당 장제스
      정부의 지원을 받을수 있었는데
       장제스는 
      "중국의 백만 군대가 못한 것을 조선의
        한 청년이 해 냈다."고 극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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