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선화님 (향린 박미리님)

[스크랩] 그럼에도 착각착각

깜비깜비 2016. 1. 7. 22:14

 

    그럼에도 착각착각  

     

    / 향린 박미리

     

     

     

     



          낡은 관절이 삐거덕 신호해 와도
          연애할 때 즐겨 신던 뾰족구두에다
          거추장스런 긴 생머리만 고수하는
          따로국밥 같은 여자도 그렇고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거까진 좋은데
          밖에 나가면 아직도 따라올 여자가
          한 트럭이라며 저 혼자만 인정하는
          공갈 빵 같은 남자도 그렇고

          쌀도 돈도 안 되는 글 나부랭이 잡고
          주야장천 씨름하면서도 한 줄 따끈한
          댓글 앞에선 칭찬에 춤추는 고래처럼인
          어떤 무명 글쟁이도 그렇고

          자신이 못다 이룬 찰진 그 꿈을
          빠득빠득 무조건 자식에게 인계하고는
          모름지기 일등만을 고집하는
          앞집 맹모파 엄마도 그렇고

          뱃살에 묻힌 그놈의 초콜릿 복근은
          나올 생각도 없는데 곧 죽어도 곧 나온다
          곧 나온다면서도 운동과는 담쌓은
          어떤 남편도 그렇고

          초심 따윈 나 모르쇠, 밥그릇만
          뜻이 있고 해 논 일도 없구마는 때만 되면
          또 나와서 풍선 공약 남발하는
          어떤 나리님도 그렇고

          하나같이 즐겨 먹는 그들만의 약이 있다
          밥보다 배부른 약, 일명 '착각'이라는 아스피린 제
          그 마니아 중에 하루라도 그것 없인
          삶이 시들해지는 나도 실은 그중 하나다

          내려놓지 못해 가지지 못해
          이루지 못해 그러지 못해
          허기진 영혼들에겐 그보다 더 땡길 수 없는
          효과만땅 최면제라서

          당신의 그대도 그대의 나도
          중독된 익숙함 또는 자아도취적으로
          오늘도 야금야금 착각착각
          포만하게 삼켜 낼 테지

          오 남용 또는 과다복용으로 인해
          치명상을 입을 수도, 입힐 수도 있다는
          주의 문구만 잘 숙지하면
          행복 만땅 최면제로는 그만한 약 또 없으므로.

             

       

       

       

       

         

         

         

           

        출처 : 열 린 바 다
        글쓴이 : 향린 박미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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