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스크랩] 날마다

깜비깜비 2011. 3. 16. 23:30
 

날마다 주는 놀이

 

= 공덕을 베풀려면 과보(결과)를 바라지 마라.

   과보를 가지게 되면 불순한 생각이 움트니,

   덕 베푼 것을 헌신처럼 버리라. 했습니다.

 

<과보=인과응보=사람이 짓는 선악에 따라 그 갚음을 받는 일.>

 

 태양은 날마다 온 우주를 비춰주고,

만물을 길러 줘도,

자기 공을 내세우지도 자랑하지도 않습니다.

태양처럼, 말없이 주고 싶어 주고,

가진 것이 넉넉해서 주고 또 주고,

아무리 주어도

날마다 줄 것이 있다는 것 이상의 행복이 있을까요?

주고 싶어서 주었고,

줄 수 있어서 주었고,

줄 때 주는 기쁨을 충분히 누렸으면

그것으로 족해야 합니다.

시간이 지나고 난 뒤에 다시 돌려받고 싶다거나

내가 그렇게 해 줬는데,

내게 돌려주는 것이 뭐 없나? 하고

받을 것을 생각한다는 것은 강도 같은 마음입니다.

누군가가 내게 무엇을 줘 놓고

"야, 너도 주라. 왜 안주나?" 한다면 어떨까요?

줄려고 했다가도 주기 싫은 마음이 될 수도 있습니다.

내 마음에 감사함이 가득 차면 저절로 되돌아갑니다.

작은 것이나 큰 것이나 모두

내 마음에 저장이 되어 있습니다.

상대방도 마찬가지입니다.

때가 돼야 되돌아옵니다.

받은 상대방 마음 속 은행에 차곡차곡

입금, 출금이 기록 돼 있습니다.

그 은행에서 자신에게로 송금(되돌려 주는 어떤 방법)은

그 통장 주인인, 줄 사람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상대의 마음에 가득차고 나면

되돌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주고 싶어서 주었고,

줄 능력이 되니 준 것입니다.

이건 씨를 뿌린 것입니다.

농작물의 경우 씨 하나에서 몇 십 배의 수확이 생깁니다.

수확을 하려면 몇 달이 걸립니다.

몇 년이 걸리는 것도 있습니다.

우리가 뿌린 씨도 똑 같습니다.

그런데 준 것에 대해 생색을 내면

준 공이 달아날 수 있습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자식에게

희생을 했다고 생각하면 보상받고 싶어지고,

남편과 자식이 그 공을 못 알아준다고 생각하면

'나는 뭔가' 하는 생각이 들고,

인생자체가 허무해 지기도 합니다.

가족이 되었으면 상대방은 뭘 원하고

또 나는 뭘 원하는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어떻게 살고 싶은 지에 관해서,

서로 진지한 대화를 해야 합니다.

가족이라면 서로 대화가 되는 사이여야 합니다.

서로의 말을 온 마음으로 듣고,

자신과 다른 점을 인정하고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내가 가족의 마음을 다 모르듯이

남편(아내)과 자녀도 내 마음을 다 모릅니다.

애기를 해서 서로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면

더할 나위가 없겠습니다.

 

"내가 어떻게 해 줬는데' 또는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하는 말 속에는

자신의 지극 정성에 대한 실망이 들어 있습니다.

나름으로 최선을 다해 줬는데

그런 말이 나온 것은 상대를 탓하기 전에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그 지극 정성은

가족이 원하는 데로 해 준 것이 아니라

자기가 하고 싶은 데로 해 준 것일 수 있고,

가족이지만 각기 다른 생각을

인정해 줘야 하는 부분도 있는 것입니다.

그 무엇보다 자신의 인생을 살지 않아서 그런 것입니다.

 

가족에게도 뭘 해 줄 때는

자기가 해 주고 싶어서 해 준 것입니다.

강제로 시켜서 해 준 것이 아닙니다.

그랬으면 바라지 말아야 합니다.

바란다는 것은 자기가 해 준 것을

돌려받고 싶은 맘입니다.

자기가 하고 싶어서 하는 맘으로 해야

나중에 돌려받고 싶은 맘이 안 생기는 것입니다.

자신의 인생을 살지 않고

가족에게 의지하고 희생하면

큰 실망을 할 수 있습니다.

가족에게 무엇을 해 주는 것은

자기 인생의 한 부분이어야 합니다.

자기 인생을 통째로 가족에게 주는 것이 아닙니다.

아내(남편, 부모, 자녀,,)란 이름의 의무감 때문에

자신의 욕구를 미뤄 두면,

어느 순간 그 욕구가 표면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제일 먼저 충족되어야 할 그 욕구는

채워질 날을 기다리며 벼르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행동을 취하게 됩니다.

자기를 찾고 싶은 것입니다.

의무를 강조하다 보면

참 사랑을 줘야 하는 부분이 작아져버립니다.

그래서 가족에게도 의무를 지키라고

지시하고 명령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지시, 명령을 받은 가족은

반발심이 생겨 자신의 의도와는 다른 행동을 하고

결국은 그로 인해 자신이 서운한 맘이 들게 된 것입니다.

자기의 욕구보다 가족에 대한 의무가 우선이라 생각하고,

가족을 우선시하고 가족에게 자기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책임의식이 강하면 그렇게 됩니다.

각자의 욕구 안에 가족에 대한 의무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자신을 참 사랑하게 되고

가족 스스로도 참 사랑하게 됩니다.

내 인생 속에 가족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가족 속에서도 자신이 주인공이어야 합니다.

그러면 가족에게는 옆에 있어 준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 됩니다. 불만이 없어집니다.

 

자식에게는 낳았을 때의 기쁨,

커 가면서의 재롱,

자식이 있는 기쁨...등으로

다 받았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저 건강히 잘 자라 준 것만도

정말 고맙고, 내 아들(딸) 이어서 고맙고. 자랑스럽고,

정말 귀하고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사람은 완벽하지 못해서 실수하면서 산다.

 실수 없는 사람은 없다. 실수가 선생님이다.

 그러면서 성장하고 조금씩 더 나은 어른이 되는 거다.

 남과 비교하지 말고 네 색깔로 살아라. 사랑한다."

하는 말을 해서 자녀 스스로 성장하게 합니다.

자기의 바른 사랑과 확실한 믿음으로 인해

가족의 마음이 행복해지면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큰일을 하고 싶은 꿈이 생깁니다.

일도 공부도 스스로 잘하게 됩니다.

가족과 교감이 되는 애기도 잘 하게 됩니다.

가족과의 추억, 앞으로 계획,

서로의 꿈 등에 관해 질적인 대화가 가능합니다.

자녀를 낳기 전의 애기도 해줍니다.

배속에서 발로 차는 애기,

그 때 어떤 아기가 나올까 하고 기대했던 애기,

병원에 가서 진찰 받던 애기,,

또 아기였을 때 애기, 돌잔치 애기,,등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애기하면

어린 자녀는 물론이고 청소년이나

이미 부모가 된 사람도

효도하고 싶은 맘이 생깁니다.

그건 자신의 부모님께 자신의 어릴 때 애기를

직접 들어보면 잘 알 것입니다.

가족이 스스로 하고 싶은 의욕이 생기게 만드는 말을

날마다 하는 것이 자신의 역할 중 가장 큰 역할입니다.

또 자부심이 생기도록 해서,

자기 욕구를 조절하고

서로를 사랑하고 이해하고

같이 성장하도록 도와주게 됩니다.

 

자신도 울고 싶을 때 있고,

위로 받고 싶을 때 있고,

사랑받고 싶은 똑같은 사람이다.

당신(남편, 아내, 자녀)에게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내가 알고 싶듯이

당신(남편, 아내, 자녀)도

내가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다.

당신(남편, 아내, 자녀)이 있어

얼마나 힘이 되는지 모른다.

당신(남편, 아내, 자녀)이 "사랑해요."

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 하는 말도 하게 됩니다.

자신에게 정직하게 되고

가족에게도 화내거나 서운해 하지 않고

자기의 마음을 말로 잘 표현하게 됩니다.

  

날마다 가족에게

주고 싶어 주는 놀이는;

쉽다. 간단하다. 즐겁다.

 

이제 '희생'을 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을 해 봐야겠습니다.

"희생"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사람이나 어떤 목적을 위하여

목숨, 재산, 명예, 이익 따위를

바치거나 버림, 또는 그것을 빼앗김입니다.

모두 누릴 수 없으니 내가 양보할 게. 라는 말도 된답니다.

그러니 어머니란 이름으로 아내란 이름으로

아버지란 이름으로 희생하지 말고,

당당하게 자기 자신의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하고, 가족을 사랑 하면서,

부모가 가족의 희생양이 아닌

자신의 인생 속에 가족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너를 위해 해 준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해 준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야 안 서운합니다.

사실이 그렇기도 합니다.

가족이 잘 되기를 바라는 이면에는

엄마(남편, 아내, 아빠)마음 편하자고

해 준 부분도 있습니다.

부모(아내, 남편)노릇 잘 하려고

자위한 부분도 있는 것입니다.

물론 사랑과 의무감이 먼저지요.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는 누구를 위해 살지 않습니다.

자신을 위해 살고 있습니다. 누구나.

그러면서, 희생을 한다는 것은

나중에 돌려받고 싶은 맘이 들어 있는

위험한 발상입니다.

생일 때 가족이 안 챙겨 준다고 하는

서운한 맘만 봐도 그렇습니다. 

바라고 싶은 것이 있으면 직접 해결 합니다.

자신이 하는 축하가 제일입니다.

가족을 포함해서 다른 사람이 하는 축하는

자축하는 것에 비하면 아주 작은 것입니다.

그것은 어떤 일을 성취했을 때 더 잘 알 수 있습니다.

온 정성으로 이뤄 낸 것과

얼마만큼의 긴 시간이 걸렸는지는 자신만이 압니다.

다른 사람은 얼마의 노력이 들었는지는

다 모릅니다. 짐작할 뿐입니다.

하나에서 열까지 다 아는 사람이 축하하는 것과

조금만 아는 사람, 잘 모르는 사람이 축하하는 것은

굉장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니 열심히 살아 온

자기 스스로를 축하하는 것이 제일 중요한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챙겨 받길 바라지 말고

가족이 알아서 안 챙겨 주면

자신이 케잌을 사서 촛불 켜고

축하 노래 불러 달라고 합니다.

불러 줄 사람이 없으면 자기가 부릅니다.

또, 갖고 싶은 물건이 있으면

자기 맘에 드는 것은

자신이 제일 잘 아니까 자신이 삽니다.

내 생일날 어떤 물건을 사고 싶은데

돈이 없으니 돈 좀 주면 안 될까요? 하고 묻든가.

돈이 없다고 하면 진심이 든 축하면 족한 것입니다.

생일 밥상을 차려 달라고 해도 좋지요.

아니면 어느 가게의 어떤 제품에 얼마 하는 것을

선물로 받고 싶다고 당당하게 말합니다.

 

태어난 지 몇 십 년이 지난

그 한 날에 대한 의미를

너무 크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입니다.

매일 날마다 자신의 날로 살면 됩니다.

그래도 뭔가 서운하면

밥이나 케잌이나 떡을 해서

주변과 나눠 먹으면 자연히 축하 받게 됩니다.

줌으로써 축하 받도록 합니다.

평일이라도, 서운한 하루를 보낸다는 것은

자기 스스로를 무시하는 일입니다.

작은 한 순간도 스스로 귀빈이라 생각하고

늘 귀빈으로 삽니다. 

자만과는 다른 당당함을 말합니다.

 

희생을 한다는 것은

자식(가족)의 마음에 짐을 지우는 일입니다.

그러니 희생한다는 맘으로 해 주지 말고,

사랑이 넘쳐서 해 주고 싶어서 해 준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희생하지 말고 자기 인생을 삽니다.

자신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당당하게 원하는 일을 하고,

원하는 것을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그것이 진정으로 자식을 위하는 일이고

자신을 위하는 일입니다.

나아가 세상을 위하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일이기도 합니다.

늙어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그 자식의 짐이 안 되는 일입니다.

 

자녀가 어릴 때는 보호자가 되어야 하고

자녀가 초등학교 이상이 되면

격려자나 응원단장이 되어야 하고,

자녀가 청소년이 되면 상담자 내지는

최고로 친한 친구가 되어야 한답니다.

자신의 성장기를 회상해 보시면 이해가 되실 겁니다.

 

오늘 날 청소년 문제가 많은 것은

부모가 성장하지 못한 채

제대로 된 상담이나 찬구가 되지 못했기 때문 아닐까요?

문제 부모는 있어도 문제 청소년은 없다고 합니다.

이제 부모인 우리 자신이 성장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책을 벗하며 살아야 합니다.

자신의 부족도 채워지고,

그 모습이 자녀를 교육하는 것입니다,

자녀는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답니다.

 

공부는 학생만 하는 것이 아니고

살아가는 자체가 공부입니다.

책을 통해서 몰랐던 것을 알아가고,

잘못 알았던 것을 바로 잡고,

자신의 옳지 못한 부분을 고치게 되고,

사라지고 잊었던 자신의 꿈도 찾고,

없던 꿈도 생기고 미처 몰랐던 재능도 발견합니다. 

모든 것이 자기 안에 들어 있다는

놀라운 사실도 알게 됩니다.

 

마음과 다른 말로

얼마나 가족을 힘들게 했는지도 알게 되고,

하나라도 실천하면 됐을 일을

쓸데없는 말들로 상처만 남기고

귀한 시간을 허비했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자신의 부족을, 모자람을 알면서도

더 공부하고 노력하지 않는 것은

자신이 자신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더 알고 싶다는 내면의 소리를 잘 듣고 실천해야 합니다.

그러면 날마다 줄 것이 많은 사람이 되어서

결국은 넘치는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 나이에 무슨 공부를 더 하냐고 하시는 분들께:

"이 부분만 좀 더" 하는 아쉬움이 하나도 없습니까?

가족이나 젊은 세대하고 대화가 되십니까?

그냥 하는 일상적인 몇 마디가 아니라

진지한 내면의 대화를 말합니다.

그들의 말에 부담되는 것은 없습니까?

그들의 질문에 그들이 기대하는 답이 가능합니까?

그들을 이해하는데 전혀 불편이 없으십니까?

사람들이 하는 말 속에 들어 있는 진짜 말이 읽어지십니까?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에 잘 적응하십니까?

너무너무 행복하십니까?

죽을 때 걸리는 것이 없겠습니까?

 

좋아하는 분야,

하고 싶은 분야에 관한 책도 좋고,

자기 계발이나 여러 분야에 이름 있는 분들의 책도 좋습니다.

공부는 어렵다고 생각하는 그것이 문제입니다.

자기가 관심 있는 분야는 정말로 재미있습니다.

공부도 일도 자기 멋에 취해서

즐겁게 노는 것이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하고 싶은 공부 놀이는;

쉽다, 간단하다, 즐겁다.  

 

 무시당해 속상하다,

못 배워서 자존심 상한다 하지 마시고

서점에 가거나, 도서관에 가서

관심 가는 분야의 책을 한 번 찾아봅니다.

 처음엔 너무 어려우면 안 됩니다.

아주 쉽고 재미있는 책이어야 합니다.

재미없으면 재미있는 부분부터 읽고

재미있는 책부터 읽습니다.

TV보는 공부를 30분만 줄이고 당장 투자합니다.

눈이 나빠서(아파서) 안 된다는 핑계대지 마시옵소서.

TV를 볼 수 있으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틈틈이 허비하는 시간을 이용해도 됩니다.

 

인생의 황금기는 소명을 찾아

행복하게 그 일에 임할 때가 아닌가 합니다.

날마다 줄 것이 있는 사람이 되어서

나날이 젊어지고 행복하다는데

한 번 도전해 볼만한 가치는 충분히 있습니다.

날마다 줄 것이 있는 사람은

굳이 자기 공을 내세울 필요도

자랑할 필요도 없습니다.

주고 싶어 주는 큰 행복을 누리는데

뭘 더 바랄 것이 있을까요?

내게 있어 줘도 또 줄 것이 있는

넉넉한 것은 무엇일까요?

능력일까요? 돈일까요, 재능일까요,

힘이 되는 긍정의 말일까요,

웃음일까요, 환한 표정일까요, 사랑한다는 말일까요,

당신은 내게 특별한 사람입니다. 일까요..

가장 쉽고 간단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서로 부담 없는 것으로,

매일 태양처럼 세상에 그것을 줍니다.

나는 넉넉한 사람이야.

나는 이것을 매일 줘도 넉넉해.

다 가져가. 하하하하.

 

날마다 주는 놀이는 ;

쉽다. 간단하다. 즐겁다.

 

(행복바이러스 29번 째 놀이였사옵니다. 감사합니다.)

 

출처 : 겨울 바다와 파도
글쓴이 : 편안한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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