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희갑 / 울며 헤진 부산항 作詞 조명암 / 改詞 추미림 / 作曲 박시춘 1. 울며 헤진 부산항을 돌아다 보며 난간 머리 흘러 온 달빛 이별만은 어렵드라 이별만은 슬프드라 더구나 정 들인 사람끼리 음~~ 음~~ 2. 달빛 아랜 허허바다 파도만 치고 부산항 간 곳 없는 수평 천리길 이별만은 무정트라 이별만은 야속트라 더구나 못 잊을 사람끼리 사람끼리~~ 김희갑 (희극 배우) 김희갑(1923년 ~ 1993년)은 대한민국의 희극 배우였다. 1923년 함경남도 장진에서 태어났다. 〈자유부인〉·〈와룡선생 상경기〉·〈오색무지개〉·〈오부자〉·〈사랑방손님과 어머니〉 등 75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하였던 그는 코미디언이라기보다는 성격배우로서의 자신의 독특한 위치를 구축하였고, 극장의 쇼무대나 텔레비전방송에 수없이 출연하여 성대모사로 옛 가요들을 불러 인기를 모으면서도 항상 실향민으로서의 한을 호소한 대표적인 연예인이었다. 서영춘, 양훈, 양석천, 곽규석, 구봉서등과 활동했고 노년에는 가요무대 출연과 레코드 판 취입등을 했고 동맥경화증으로 1993년 5월 18일 사망했다. 향년 71세. 1934년 회령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40년 일본 메이지대학(明治大學) 상과 별과에 입학하였으나 중퇴하고 1942년에 귀국하였다. 1943년 조선전업주식회사에 입사하였다가 퇴사하고, 1945년 월남하여 대동신문사의 기자생활을 하였으나 역시 성격에 맞지 않아 퇴직하였다. 1946년 3월 반도가극단에 입단하여 처음에는 프롬프터로 출발하였다. 1946년 11월 〈장화홍련전〉의 주요 배역인 사또역을 맡은 배우가 갑자기 잠적하자, 대역으로 출연하면서 배우로서 첫출발을 하게 되었다. 〈칠공주〉에서 정식배역을 맡기 시작한 이후, 〈공팔용〉·〈옥루몽〉·〈에밀레종〉 등 다수 작품에 출연하였다. 6·25전쟁 중에는 선무공작단의 일원으로 종군하였다. 1956년 〈청춘쌍곡선〉으로 비로소 영화에 등단하여 인기를 얻게 되면서 〈부부독본〉·〈복도 많지 뭐요〉· 〈마도의 향불〉·〈오부자〉 등 수많은 영화에 출연하였다. 당시 동료 영화배우이며 코미디언인 구봉서(具鳳書)와 함께 ‘합죽이·막둥이’라는 예명으로 콤비를 이루어 서민들의 절대적인 사랑을 받았다. 한편 자유당 정권 말기에 김희갑의 이미지에 큰 영향을 끼친 사건이 발생하는데, 반공예술인단 등을 조직하여 연예인을 정치선전에 동원했던 정치깡패 임화수와의 악연이 그것이다. 선거를 앞두고 임화수 일당이 정치행사에 출연할 것을 빈번히 강요해왔으나 김희갑이 이를 거절하여 이에 분개한 임화수가 전치 4주의 폭행을 가한 것이다. 당시 이 사건은 합죽이 구타사건으로 큰 이슈가 되었으나 당사자인 임화수는 벌금 3만환에 그치는 가벼운 처벌을 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1967년 그가 주연으로 출연한 국책영화 〈팔도강산〉이 흥행에 성공함으로써 국가발전의 홍보에 기여한 공로로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의 총애를 받기도 하였다. 1964년 미국 국무성 초청으로 미국을 다녀왔으며 1968년 〈속 팔도강산〉의 주연으로 출연하여 역시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1963년 제10회 아시아영화제에서 〈새댁〉으로 성격배우상을, 같은 해 제3회 대종상에서 〈쌀〉로 남우조연상을, 그리고 1972년 제11회 대종상에서 〈작은 꿈이 꿈꿀 때〉로 두 번째 남우조연상을 수상하였다. 1992년 그의 자전회고록인 《어느 광대의 사랑》을 출간하였다. |